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가수 신 해철 씨가 27일 사망하였다는 뉴스가 있었다. 의료진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지만 사망하였다는 보도였다. 신 해철 씨 뿐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을 세상에 있는 모든 의술을 다 동원하여서 그 사람을 살렸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만일 세상에 있는 의술을 다 동원하여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이제껏 죽어간 사람들은 왜 죽었겠는가?
그러므로 단언컨대 사고이든 병으로이든 노화로 인한 자연사이든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는 한 가지도 없다. 죽음은 세상에 있는 재물을 다 동원한다해도,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의술을 다 동원한다해도,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과 지혜를 다 동원한다해도, 그리고 세상의 권력을 다 동원한다해도 막을 수 없다. 이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은 인류 역사에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진리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문학가인 까뮈는 인간의 존재의 이 부조리를 신화에 나오는 시지푸스를 들어서 설명하려 했다. 시지푸스는 코린토스의 왕으로서 인간 가운데 아주 교활한 자로서 너무 못된 짓을 많이 하여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라는 형벌을 받았는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힘들여 밀어 올려 보지만 바위는 산꼭대기의 경사에 의해 이내 아래로 밀려 내려가고 만다. 그러므로 시지푸스는 부질없는 노력을 반복해야 하는 형벌이 그의 운명이 되었다.
그처럼 인간도 생명과 삶을 사랑하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현상에 의해 삶을 사랑하고 생명 지향적인 삶의 계획들도 모두 무의미하게 되는 존재의 부조리를 시지푸스처럼 불가항력적이며 자기 의사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굴복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까뮈는 설명하려 하였다. 그는 인간 존재상황이 대단히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그 해결책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음을 절감했을 뿐이다.
고금을 통하여 수많은 현인들이 인간 존재의 상황에 대하여 궁구하였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존재의 부조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며 생명의 근원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부조리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가 태어나고 죽게 되는 것은 한 인간의 의사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었고 선택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과 인간이 죽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면, 그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알게 된다면 개개인은 선택을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냐, 아니면 한정 된 생명이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떠한 과학적 연구나 업적으로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발견할 수 없으며 이 세상에 있는 종교를 통해서도 그러한 진리는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가 추구하는 하는 것은 이 땅에서의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실증할 수 없는 허구와 거짓된 관념에 의한 저 세상의 영원한 삶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종교는 생명 지향적이 아니라 사망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구원은 언제나 죽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로써 신 해철 이라는 가수에 대해 신문을 보면 “27일 신해철의 소속사 KCA엔터테인먼트는 "신 해철씨가 이날 20시 19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사고관념이 이 세상 종교의 내세관이고 사람들의 일반적 내세관이다.
이러한 관념에 의하면 죽음은 죽음이 아니고 생명과 삶의 변화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죽음을 슬퍼하는가? 죽음이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 죽음이 없는 하늘나라의 삶으로 가는 변화라면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환영해야 할 것인데도 사람들은 가능하면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종교인이든 무종교이든, 또는 무신론자든 그렇게 하늘로 가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죽은 후에 가는 하늘나라는 실증이 없고 인간의 관념에만 존재하는 허구이고 거짓이기 때문이다. 사실 죽은 후에 절대로 죽지 않은 불멸하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인간의 몸을 빠져나와 하늘나라에 가서 다시는 죽음을 보지 않는 것이 진리라면 어떠한 인간도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것이며 하늘에서의 그 영원한 삶을 얼마나 기대하겠는가?
그러므로 영혼불멸이라든가, 사후 하늘나라의 삶은 진리가 아니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바라는 허구의 위로일 뿐이며, 그러한 관념은 우연히 이 세상을 지배하는 철학적 관념이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그러한 관념으로 이끈 아주 고도한 사기로서 그러한 사고관념을 갖도록 하는 지성 있는 영물이 배후에 있지만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잘 알지 못한다.
성경은 영혼불멸과 사후 하늘나라의 삶이라는 관념의 창시자의 정체를 알려 주는데, 예수께서는 그 자를 요한복음 14장 30절에서 “이 세상 신” “이 세상 통치자”라고 하였으며,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 후서 4장 4절에서 “이 세상 신”라고 하였고 사도 요한은 요한 1서 5장 19절에서 “온 세상은 악한 자의 지배 아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영혼이라는 것이 사람의 몸을 빠져나와 하늘나라로 간다는 관념의 창시자는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자로서 실재하는 신격을 가진 신과 같은 자이다. 성경은 바로 이 지성 있는 영물이 이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배자로서 그가 인간을 어떻게 속여 왔고 인간 역사를 창조주 하느님의 목적과 반대 방향으로 인도해 왔는지를 밝혀 준다.
그래서 1 세기 당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여러분은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으며, 예수께서 말한 진리는 유대인들이 기대하였던 로마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인간이 속박되어 있는 거짓된 종교적 미신과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할 수 있는 진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면 본래 하느님께서 창조한 인간은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 사람에게 죽음이 오게 되었고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간다는 허구의 관념이 있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다.
하느님은 인간을 지상에 인간보다 앞서 창조한 동물들과 다르게 자신의 특성과 성품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기로 원하셨다. 성경은 창세기 1장 26-28에서 이렇게 알려 준다.
“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를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기어 다니는 동물을 다스리게 하자.’ 이렇게 하느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기 시작하셨으니,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축복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날짐승과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이 성경 기록은 인간 존재의 본성에 무엇을 알려 주는가?
인간은 이 땅에서 창조되어서 동물처럼 물질적 신체를 가졌지만 동물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창조된 자 임을 알 수 있다. 동물에게 없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하느님의 성품과 도덕성과 특성을 지니도록 창조되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동물들을 다스릴 책임도 주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이 세상의 지성들이 지지하는 다윈의 진화론이 얼마나 인간을 추락시키고 인간성을 타락시키게 하는 것인가? 다윈의 진화론은 증명된 적은 없지만 인간을 원숭이에서 진화한 동물의 수준으로 하향시키고 열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존재라면 그에게 도덕성이라든가, 자유의지라든가, 창조적 능력들과 이성적 추리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고로 진화론 역시 성경에서 말하는 “이 세상 신” “이 세상 통치자”자 의도하고 고안한 사기극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사실 진화론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빠져나와 하늘에 간다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둘 다 증명될 수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둘 다 거짓이고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느님은 인간을 무엇으로부터 만들었는가?
성경은 이 땅의 물질 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창세기 2장 7절은 “여호와 하느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시자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성경 기록은 하느님이 사람을 육신을 만들고 난 뒤에 영혼을 몸에 집어넣으니까 사람이 살아 있게 되었다고 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성경 기록은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그의 콧구멍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시자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땅의 물질로 만들어진 사람은 생명력을 갖고 있지 안했지만 하느님이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자 사람이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사실 이 점은 사람이 죽었을 때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생명력이 사람의 몸에서 없어지면 사람은 호흡과 심장 박동을 정지한다. 그러면 사람의 세포는 얼마간 살아 있다가 모든 세포는 죽게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뇌세포가 죽고 나면 심장박동과 인위적인 호흡을 시키더라도 그 사람은 소생할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의 생명력은 몸에서 없어지면 어디를 여행해 갈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양초의 불꽃을 보라. 양초의 불꽃이 꺼지면 그 불꽃이 다른 장소에 이동해 있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생명력도 몸에서 없어지면 그 어디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 양초의 불꽃처럼 없을 뿐이다. 생명의 근원이 하느님에게 있으니 오직 죽었던 인간을 생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도 하느님의 의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성경은 그런 희망을 알려 주는데, 사도행전 24장 15절은 “그리고 저도 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것과 똑같은 희망을 하느님께 두고 있습니다. 그 희망은 의로운 사람들과 불의한 사람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제 “이 세상 신”이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하고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절대로 죽지 않은 영혼불멸이라는 허구의 거짓된 관념이 인간의 사고관념을 지배하도록 하여 왔는지를 창세기 3장 1-5절 기록을 살펴보자.
“뱀은 여호와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중에 가장 조심성이 있었다.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느냐?’ 그러자 여자가 뱀에게 대답했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들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해서는 하느님께서 너희는 그것을 먹어서도 안 되고 만져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너희가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했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하느님처럼 되어 선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성경 기록은 무엇을 알려 주는가?
동산 중앙에 있는 한 나무의 열매를 하느님은 먹으면 죽는다고 하였고 뱀으로 가장한 자는 그 열매를 먹더라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기에 더하여 그 열매를 먹으면 하느님처럼 되는 지위 향상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어떻게 하였는가? 창세기 3장 6절은 “여자가 보니, 그 나무의 열매는 먹음직스럽고 눈으로 보기에도 탐스러웠으며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서 그 열매를 따서 먹기 시작했다. 후에 남편과 함께 있을 때에 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고 알려 준다.
이제 하느님이 먹으면 죽는다는 그 열매를 첫 인간남녀는 먹었다. 결과가 누구의 말대로 될 것인가? 창세기 3장 17-19절은 “그리고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먹어서는 안 된다고 내가 명령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므로 너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는다. 너는 평생토록 고통 속에서 땅의 소출을 먹을 것이다. 땅은 너에게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낼 것이며, 너는 들의 식물을 먹어야 할 것이다.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을 것이며 결국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네가 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인간은 죽게 될 것이다.
누구의 말이 참이고 진리였는가? 당연이 하느님의 말이 진리였다. 첫 인간 후손들이 아직도 죽지 않은 자가 없는 사실이 그 점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뱀을 가장한 자의 말은 인간을 죽음으로 인도한 거짓말이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버지 마귀에게서 났고, 여러분의 아버지의 욕망대로 행하고자 합니다. 그는 시작할 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안에 굳게 서지 않았습니다. 진리가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짓을 말할 때에 자기 성향에 따라 말합니다. 그가 거짓말쟁이이고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마귀라고 한 뱀을 가장한 영물은 자신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인간 사고관념을 지배할 철학적 관념을 고안해 내었다. ‘육신은 죽지만 영혼은 절대로 죽지 않고 죽은 후에 저 세상 하늘나라에 간다.’는 증명될 수 없고 할 수도 없는 철학적 거짓 관념이 인류를 지배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인류는 하느님의 말씀보다 거짓의 아버지, 인간을 죽음으로 인도한 살인자의 말을 지금까지도 더 신뢰하며, 온갖 거짓에 근거한 죽은 자의 관습을 만들어 내어 그러한 전통의 지배를 받고 있다.
성경은 그 자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려 주는데, 계시록 12장 9절은 “그리하여 큰 용이 내던져졌는데, 그는 원래의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로서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자이다. 그가 땅으로 내던져졌으며,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던져졌다.”고 그의 행동에 의해 불러진 이름, 중상자를 의미하는 마귀와 반항자와 대항자를 의미하는 사탄이라고 알려 준다. 그는 이제 이 땅 지구 영역에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을 그릇 인도하는 “이 세상 신”으로서 그의 천사들과 함께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 진리를 통해 개개인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성경은 요한복음 17장 3절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한 분의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것입니다.”라는 것을 선택하도록 제안 한다. 이 글은 읽는 분은 영원한 생명의 길, 진리를 알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를 알기 위해 성경을 연구해 보는 것은 어떤가? 무료로 성경을 연구할 수 있는 마련이 www.jw.org 사이트를 방문해 보시면 알 수 있으며, 본인의 이 메일로 연락할 수 있다. 본인의 이 메일은 biggrub@naver.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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