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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당골동품살인사건

황령산산지기 2014. 11. 1. 08:57

    
차길진의 영혼은 살아있다] 금당 골동품 판매상 살인사건
도굴꾼이 가져온 물건 영가 저주에 처참한 죽음
 "한 시도 그 날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기자출신 언론인 P씨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구명시식 전날 밤에도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악몽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1979년 9월 27일, 경찰서 출입 기자였던 P씨는 놀라운 특종에 붉게 상기된 얼굴로 마포구 성산동으로 향했다.
 하루 전날인 26일 밤, 수사과장은 경찰서 옆 여관에서 철야 근무를 하며 취재에 매달리던 P씨의 열정에 감동해 슬쩍 특종을 던져줬다. 그는 급하게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 "금당 골동품상 주인 부부와 운전기사의 시신이 매장된 장소를 알아냈습니다. 범인은 32세, 박철웅. 중소기업 사장입니다."
 그가 성산동에 도착했을 때, 시신 발굴이 막 시작됐다. 그들이 실종된 것은 1979년 6월 20일. 종로구 부암동에 사는 금당 골동품상 사장 J씨는 진귀한 도자기를 팔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며 운전기사 L씨와 함께 집을 나섰다.
 부인 K씨는 오후 2시 경, 남편으로부터 계약금으로 돈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은 뒤 외출 후 실종됐다. 전대미문의 실종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P씨는 사건이 발생한 6월부터 통행금지를 고려, 경찰서 바로 옆에 있는 여관으로 출퇴근하며 사건 취재에 매달렸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끝날 무렵, 그는 매미 소리 진동하는 박철웅 집 앞마당에 서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비닐로 꼼꼼히 싼 3인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취재 기자이기에 어쩔 수 없이 시신을 확인했다. 이후 그는 시신의 환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P씨는 그 날을 떠올리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냈다. 그는 사건을 맡으면서 피해자 J사장의 형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얼마 전 그가 세상을 떠나자 구명시식을 청했다. 비명에 동생을 잃고 쓸쓸히 살다간 J사장의 형을 위한 구명시식이었지만 자연스레 의식은 금당사건 피해자 영가와 가해자 박철웅 영가에게 맞춰졌다.
 박철웅 영가는 장대한 기골에 뚜렷한 선을 가진 남자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내가 여러 차례 천도의식을 올려주었던 서대문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재소기간 중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 항상 성경책을 가까이 하며 참회의 나날을 보냈고 사형 후 장기기증까지 했다. 영가는 시종일관 예의바르고 정중했다.
 그는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다. 삶의 기복은 심했으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교사 출신 음악가 여인을 만났을 때였다. 만약 그녀가 암으로 죽지 않았더라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 영가와 함께 나타나 처음부터 J사장을 죽이려 한 것은 아니었다며 지난날을 후회했다.
 금당사건 이면에는 영계의 저주가 서려있었다. 피해자 J사장은 전라도의 몰락한 명문가 집안의 후손으로 혼자서 고학하며 어렵게 성장했다. 그의 친조부는 경술국치 때 나라 잃은 슬픔으로 자결했다. 애국열사로 생을 마감했으나 자살령은 천도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아 자손을 힘들게 했다.
 J사장은 상경해 골동품상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영가의 저주를 사고 말았다. 그는 골동품상은 도굴꾼과 거래할 수 밖에 없었는데 도굴꾼이 가져온 물건이라는 게 남의 무덤을 함부로 파서 몰래 훔쳐낸 부장품으로 그가 거래한 골동품은 하나같이 영가의 집착이 남아있었다. 순간 투탕카멘의 저주가 생각났다.
 P씨는 J사장 가족영가의 천도를 소원한 뒤, 박철웅과 여인 영가를 위한 덕담도 잊지 않았다. "최후의 악인은 없는 법입니다. 부디 현생의 악연을 잊고 새롭게 태어나시길 바랍니다." 금당 사건은 세월 속에 묻혀도 25년 동안 시신 악몽에 시달렸던 P씨는 구명시식 후 비로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출처 : 귀신과 영혼의 신비
글쓴이 : 눈부신햋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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