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에게 온정을 베푼박문수

암행어사 박문수가 거지꼴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던 때였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서 주막에
들었는데, 봉놋방에 턱 들어가 보니
웬 거지가 큰 대자로 퍼지르고
누워 있었다. 사람이 들어와도
본 체 만 체, 밥상이 들어와도
그대로 누워 있었다.

“거, 댁은 저녁 밥을 드셨수?„
“아, 돈이 있어야 밥을 사 먹지.„
그래서 밥을 한 상 더 시켜다
먹으라고 줬다. 그 이튿날 아침에도
밥을 한 상 더 시켜다주니까 거지가
먹고 나서 말을 꺼냈다.

“보아하니 댁도 거지고 나도 거진데,
이럴 게 아니라 같이 다니면서
빌어먹는 게 어떻소?„
박문수도 영락없는 거지꼴이니
그런 말 할만도 하다. 그래서
그 날부터 둘이 같이 다녔다.

1:세사람 살려주고 사례로받은 백냥
제법 큰 동네로 들어서니 마침
소나기가 막 쏟아졌다.
그러자 거지는 박문수를 데리고
그 동네에서 제일 큰 기왓집으로
썩 들어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한다는 말이
“지금 이 댁 식구 세 사람 목숨이
위태롭게 됐으니 잔말 말고
나 시키는 대로만 하시오.
지금 당장 마당에 멍석 깔고 머리
풀고 곡을 하시오.„
안 그러면 세 사람이 죽는다고
하니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때 이 집 남편은 머슴 둘을
데리고 뒷산에 나무 베러 가있었다.
어머니가 나이 아흔이라 미리 관목
이나 장만해 놓으려고 간 것이다.
나무를 베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자 비를 피한다고 큰
바위 밑에 들어갔다.

그 때 저 아래서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들려왔다. “이크,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나 보다.
얘들아, 어서 내려가자.„머슴 둘을
데리고 부리나케 내려오는데 뒤에서
바위가 쿵 하고 무너져 내렸다.

간발의 차이로 위험을 모면하고
내려온 남편은 전후 사정을 듣고
거지한데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우리 세 사람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겠소?
내 재산을 다 달란대도 내놓으리다„
“아, 정 그러면 돈 백 냥만 주구려.„
그래서 돈 백 냥을 받았다. 받아서는
대뜸 박문수를 주는게 아닌가.

“이거 잘 간수해 두오. 앞으로
쓸데가 있을 테니.„
박문수가 가만히 보니 이 거지가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시키는 대로 돈 백 냥을 받아서
속주머니에 잘 넣어 두었다.

2:7대독자 구해주고 사례로받은 백냥
며칠 지나서 어떤 마을에 가게 됐다.
그 동네 큰 기와집에서 온 식구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거지가 박문수를 데리고 그집으로
쑥 들어갔다. “이 댁에 무슨 일이
있기에 이리 슬피 우시오?„

“우리 집에 7대독자 귀한 아들이
있는데, 이 아이가 병이 들어
다 죽어가니 어찌 안 울겠소?„
“어디 내가 한 번 봅시다.„
그러더니 병 든 아이가 누워 있는
곳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사랑
채로 들어가선 주인에게 말했다.

“아이 손목에 실을 매어 가지고
그 끄트머리를 가져오시오.„
미덥지 않았으나 주인은 아이 손목
에다 실을 매어 가지고 왔다.
거지가 실 끄트머리를 한 번 만져
보더니 “뭐 별것도 아니구나. 거
바람벽에서 흙을 한줌 떼어오시오.„

바람벽에 붙은 흙을 한줌 떼어다
주니 동글 동글하게 환약
세 개를 지었다. 주인이 약을 받아
아이한테 먹이니 다 죽어가던
아이가 말짱해졌다.

주인이 그만 감복을 해서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7대독자 귀한 아들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내 재산을
“다 달란대도 드리리다.„ “아,그런 건
필요 없고 돈 백냥만주구려.„
이렇게 해서 또 백 냥을 받아
가지고는 다시 박문수를 주었다. “잘
간수해 두오.앞으로 쓸데가 있을거요.„
3:묘자리 봐주고 사례로 받은백냥
며칠 가다가 보니 큰 산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웬 행세 깨나 하는
집에서 장사 지내는 것 같았다.
기웃기웃 구경하고 다니더니 마침
하관을 끝내고 봉분을 짓는 데 가서

“에이, 거 송장도 없는 무덤에다
무슨 짓을 해?„하고 마구 소리를 쳤다.
일하던 사람들이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네 이놈, 그게 무슨 방정맞은 소리냐?
그래, 이 무덤 속에 송장이
있으면 어떡할 테냐?„

“아, 그럼 내 목을 배시오. 그렇지만
내 말이 맞으면 돈백냥을 내놓으시오„
일꾼들이 달려들어 무덤을 파헤쳐
보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과연 송장 든 관이 없었다. “내가 그걸
찾아 주려고 온 사람이오. 염려 말고
북쪽으로 석자 세 치
떨어진 곳을 파보시오.„

그 곳을 파 보니, 아닌게 아니라
“거기에 관이 턱 묻혀 있었다.
여기가 명당은 천하 명당인데 도둑혈
이라서 그렇소. 지금묻혀 있는
곳에 무덤을 쓰면 복 받을 거요.„
이렇게 해서 무사히 장사를 지내고
나니, 상주들이 고맙다고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묘자리를 이렇게 잘 보아 주셨으니
우리 재산을 다 달란대도
내놓겠습니다.„ “아, 그런 건 필요
없으니 약속대로 돈 백냥만 주구려.„
그래서 또 돈 백냥을 받았다.
받아 가지고는 또 박문수를 주었다.
“이것도 잘 간수해 두오. 반드시
쓸데가 있을 거요.„

4:백일 정성 끝에 마련된 삼백냥
그리고 나서 또 가는데, 거기는 산중
이라서 한참을 가도 사람 사는
마을이 없었다. 그런 산중에서 갑자기
거지가 말을 꺼냈다.
“자, 이제 우리는 여기서 그만 헤어
져야 되겠소.„ “ 아, 이 산중에서
헤어지면 나는 어떡하란 말이오?„
“염려 말고 이 길로 쭉 올라가시오.
가다가보면 사람을 만나게 될 거요.„
그러고는 연기같이 사라졌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한참 동안 올라
가니 고갯마루에 장승 하나가 딱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웬 처녀가 물을 한 그릇
떠다놓고 빌고 있었다. “장승님 장승님,
영험하신 장승님. 우리 아버지 백일
정성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한시
바삐 제 아버지를 살려 줍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박문수가 무슨 일로 이렇게 비느냐고
물어보니… 처녀가 울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관청에서 일하는 심부
름꾼이온데, 심부름 중에 나랏돈
삼백 냥을 잃어버렸습니다.
내일까지 돈 삼백 냥을 관청에 갖다
바치지 않으면 아버지 목을 벤다는데,
돈을 구할 길이 없어 여기서 백일
정성을 드리는 중입니다.„

박문수는 거지가 마련해 준 돈
삼백냥이 떠올랐다. 반드시 쓸데가
있으리라 하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이로구나 생각했다. 돈 삼백 냥을
꺼내어 처녀한테 건네줬다.
“자, 아무 염려 말고 이것으로 아버지
목숨을 구하시오.„ 이렇게 해서
억울한 목숨을 구하게 됐다.

그런데 그 처녀가 빌던 장승이 비록
나무로 만든 것이지마는 가만히
살펴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아까까지 같이 다니던 그 거지
얼굴을 쏙 빼다 박은 게 아닌가!
=◈{펌해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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