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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충무공 이순신장군]과 [목포의 눈물]

황령산산지기 2012. 7. 14. 08:44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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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대표적 고유 형상이라 할 [삼태극]입니다. 

 

 

 

 

 

 

 

고조선이 3나라로 나뉘어진게 [고구려, 백제, 신라]고

다시 통일이 되어 고려가 되고 다시 조선이 되었죠.

 

[고구려, 백제, 신라]가 통일된 지도 이미 천년이 지났고

오랜 세월 결혼과 이주(이사)로 이 3지역의 피가 섞이고 섞여서

지금은 평양사람이든, 부여 사람이든, 경주 사람이든

그 혈통의 차이는 없다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고구려만의 혈통이다.' 또는 '나는 '백제만의 혈통이다.'

또는 '나는 '신라만의 혈통이다.'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현대의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고구려, 백제, 신라]의 혈통을 1/3 정도씩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남한사람과 북한사람의 혈통의 차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북한이 고구려의 [제1 계승]이라 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남한 인구가 북한보다 2배나 많으니

고구려의 [제1 계승]은 남한이라 봐야겠지요.

[고구려의 후손]들이 북한보다 남한에 2배나 많으니까요.

 

 

[애향심]은 좋은 일이고

[지역감정]은 우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애향심]이 있는 사람은 [지역감정]에 빠지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애향심]은 그 바탕이 [인간애]에 있고

[지역감정]은 그 바탕이 [집단이기주의]에 있다 봅니다.

 

[집단이기주의]는 결국 [개인이기주의]에 불과한 거겠죠.

 

[애향심]과 [지역감정]은 서로 비슷해 보여도

사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사실은 정반대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명한 옛노래 중에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있죠.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발표된 곡이라 하는데

이 노래가사에 비화가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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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 밑에
님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상처가 새로워지는가
못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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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가사 2절 중에

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 밑에 ]

이 부분이 문제가 되어 노래 만든 사람이 일제경찰에 끌려가서 문초를 받았다 합니다.

다들 아시듯이 [노적봉]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그 봉우리에 가마니를 둘러서 식량을 많이 쌓아놓은 것으로 보이게 하여   

왜구들이 겁먹고 물러나게 했다는 설화로 유명한 봉우리이니

일경들로서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겠죠. 

 

그 때 그 사람은 일경에게 그 가사가

[ 삼백연 원안풍(三栢淵 願安風)은 노적봉 밑에] 이라고 둘러댔다 합니다.

'삼백연이라는 연못에 부는 바람을 뜻한다'고 둘러댄 거죠.

 

즉 노래를 할 때는    

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 밑에 ]

이렇게 부르고

가사를 적을 때는

[ 삼백연 원안풍(三栢淵 願安風)은 노적봉 밑에]

이렇게 적게 되었다 합니다.

 

 

[ 노적봉 밑에 님자취 완연하다]

 

노적봉 밑에 완연한 자취의 [님]은 누구겠습니까.

당연히 [충무공 이순신장군]이겠죠.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왜구들은 조선과 명의 실세들에게 뇌물도 주며

자신들이 안전하게 일본으로 퇴각할 수 있도록 해달라 하죠.

[이순신함대]가 자신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거죠.

그리하여 이순신장군은 조선과 명의 조정으로부터

퇴각하는 왜구를 공격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게 되죠.

 

그런데 이순신장군은 그러한 압력을 무시하고 끝까지 왜구들을 혼을 내주죠.

그 이유는 왜구들이 다시는 도발할 엄두를 못내도록 하고자 함이었겠죠.

 

남의 나라를 침략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서

다시는 그러한 짓을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그렇게 혼이 난 왜구들은 그 후 3백년 동안 전면적 도발을 하지 못하죠.

 

3백년

 

3백년 후 1900년도 무렵 일본이 다시 한국침략에 나서는데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대대적으로 군사를 앞세워 침략하지 않고

외교관계니 뭐니 하면서 물이 스며들듯이 스물스물 대한제국 조정을 장악하여

마치 대한제국이 자발적으로 한일합방에 찬성하여 일본과 합방한 것처럼 '기만전술'을 썼죠.

그들의 조정장악으로 고종황제 등의 실제 의지가 한국 국민들에게 공표되지 못했고

그리하여 의병이 비교적 대대적으로 일어나지 못했죠.

일제의 '사기전술'에 많이 기만당한 거로 봐야겠죠.

 

일본이 굳이 이러한 '기만전술'을 쓴 이유는 국제적인 여론의 눈치도 보아서였겠지만

임진왜란 때 한국의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의병]들에게 혼이 난 경험과

[이순신함대] 등 관군에게 혼이 난 경험이 그 큰 이유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의 노래가사에는

조국인 한국의 해방을 바라는 절절한 마음을 '연인에 대한 그리움'처럼 표현한 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해방을 바라는 표현을 직설적으로 쓰면 일제의 심각한 탄압을 받게되고

그 노래가 대중에 널리 불려지기 어려워지기 때문이었겠죠.

  

( 당시의 시(詩)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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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상처가 새로워지는가
못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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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목포의 눈물] 3절 가사를 보면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로 시작하는 이순신장군의 시가 연상된다 할 []이 나오고

 

어찌하여(어쩌다가) 3백년전의 상처가 다시 찾아왔는가 하는  

 

어찌타 옛상처가 새로워지는가

하는 귀절이 나오죠.

 

 

그리고 이 노래가 나온 1935년 당시에는 이미 나라를 빼앗긴지 한참 되어서

한국이 과연 다시 독립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도 많이들 했겠죠.

 

못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한국이 해방을 못할 것이면 차라리 한국 해방에 대한 의지도 포기하는 것이

괴로운 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 마음도 들었겠죠...

어차피 영영 해방이 안될 것이라면...

 

 

 

그러나

 

항구에 맺은 절개

 

한국에 대한 절개(지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일제강점기의 노래, 연극은 흔히 [신파]라 불리는

아주 슬픈 것들이 많죠.

이는 연인과의 이별을 의미하는 것들이기 이전에

그 저변에는 [없어진 조국에 대한 절절한 슬픔]이 깔려있어서

유독 일제강점기의 노래나 연극들이 그리 슬픈 것이 많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는 일본에 대해 무슨 증오나 보복같은 것을 해야한다는 것은 전혀 아니고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진정으로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서 앞으로 다시는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아야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국은 [근본적 대국(大國)] 답게 일본에 대해서도 의연하게 대하면 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한국은 상당한 강국이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이 한국과의 우호, 교류를 대단히 필요로 하는 상황을 보아도

이제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 무슨 '군사 행동' 같은 것을 쉽게 할 수는 없는 상황이죠.

 

한국은 미국의 이른바 '세계전략'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나라이고

중국도 북한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과 수교할 정도로 한국과의 교류가 절실히 필요하고 

러시아 역시 그들의 국익을 위해서 한국과의 우호, 교류가 아주 중요하죠.  

 

그리고 이미 오랫동안 일본경제가 정체상태에 있고 위기상태인 면 많은데

한국과의 군사충돌이 일어나면 일본경제가 망해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에

일본이 무슨 '군사 행동' 같은 것을 일으키기는 대단히 어렵다 생각합니다.

그들이 망해버릴 생각이 아니고서야 말이죠.

 

그리고 가면갈수록 차차 한국이 일본을 추월해 나가고 있죠.)

 

 

한국 순항(크루즈)미사일의 위력   <- 관련글

 

 

 

 

 

황성옛터

 

[황성옛터]도 일제강점기 때의 노래 중에 유명하죠.

개성의 고려궁궐을 보고 지은 가사라 하는데

일제의 '발악'을 피해서 황성(荒城)이라 했지만

사실은

[황제의 궁궐]이라는 의미의 황성(皇城)

 

고려의 태조, 광종 등 조종(祖宗)의 존칭은 오직 황제에게만 붙일 수 있는 말이고

조선 때에도 태조, 세종 등 오직 황제에게만 붙일 수 있는 조종(祖宗)의 존칭을 썼는데

중국도 이에 대해서까지는 간여를 하지 못했죠. (고려말 원나라 압박기는 예외.)

이는 고려, 조선이 스스로 황제국을 표방한 것이고

이는 [절대적인 독립국]을 표방한 것이니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 한국인들이 그 원통한 마음을

[황성옛터]라는 노래에 담아 불렀다 할 수 있겠죠.

한국은 원래 절대적인 독립국이라는 뜻으로요.

 

 

 

한국의 트로트는 일제강점기에 나왔는데

일본의 엔카 역시 비슷한 시대에 나와서

누가 원조냐 하다가 

일본 엔카의 창시자인 고가 마사오(古賀政男)가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 이며

한국의 초기 트로트를 듣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 조명되면서

한국의 트로트에서 일본 엔카가 나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하겠습니다.

 

 

트로트의 원조는 한국, 일본 엔카 창시자는 한국인 <- 관련글

 

 

감사합니다.

 

 

 

 

 

 


 

 

 

 

 

 

 

그림 출처 - 2012년 6월 8일 한겨레신문 [한겨레 그림판]

 

 

 

 

 

 

 

 

[ 영원(永遠)에 합당(合當)한 삶을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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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민족, 다른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공연히 배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게이트웨이 투 더 월드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출처 : 한국고대사
글쓴이 : 한밝의 후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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