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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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령산산지기 2016. 3. 5. 17:21

그림자(장원각성).hwp

 

 

 

 

그림자

 

   저승길 경험 불행 극복 힘 얻어

 

장원각성(광주시 서구 농성2)

 

 

   나는 11대 종손인 아버지의 44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3대 독자이신 아버지께서는 할머니의 새벽기도 공덕으로 할머니 연세 오십이 가까워서야 태어나셨고 15살 가을 동갑 신부를 맞이했다.

 

   그러던 1996521일 새벽.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병에 걸려 중환자실에 누워 하루에도 몇 번씩 영안실로 내려가는 유체를 본다. 생과 사의 간이역. 이 곳에서 좋아지는 것은 신기하게도 귀뿐이다. 보호자와 의료진의 발자국 소리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니 말이다.

 

   나는 코에 산소 호흡기를 꽃고 입으로는 물 한 모금도 넘길 기력이 없어 하루에 한 번씩 코에 관을 넣어 연명하게 되었다. 이런 악조건에서 보름이 지나니 정신이 포기 쪽으로 바뀌었다. 건강할 때는 참회기도 반야심경이 끝나야 하루를 접었는데, 다행히 습이 있어서일까. 아파오는 고통보다 더 크게 관세음보살을 찾으면서 이겨 나갔다.

 

   이 무렵 칠흙 속 한줄기 빛은 뜻밖에 금강경 사구게였다.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명법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이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어다.’

 

   지금 내 처지를 이렇게도 절실하게 말씀해 놓으셨단 말인가. 막상 저승을 받아들이고 이승을 관조하니 제일 먼저 열심히 공부하지 못함이 후회스러웠다. 불법이 좋아 야간불교대학 2년을 다니며 포교사고시 1회 합격하고도 전법을 실행하지 못한 것도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중환자실에서 이승을 떠나는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마치 현실인 줄 알았다. 그 꿈은 너무 생생하고 지금도 그 감촉이 남아 있다.

 

   이승의 다리를 건너니 이승에 두고 온 사람은 아지랑이처럼 작은 물방울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동굴이 보였다. 동시에 문이 내려지고 무엇인가 밟은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뜨니 동굴 속의 새벽이었다. 이후 저승사자의 안내로 흑암바다를 날아서 가까이 가니 보석으로 지어진 극락전이 공중에 떠 있는데 난간이 없는 곳에 나를 내려놓는다. 금으로 된 마루는 뜻밖에 따스한 안방의 온도처럼 느껴지고 소나기 온 뒤처럼 청정한 공기가 느껴졌다. 연분홍 기둥과 샛노란 난간에서 빛이 멀리서는 불덩어리로 보였지만 막상 연분홍 기둥을 두팔로 안아 보니 따스했다. 아름다운 색채, 맑은 공기, 넓은 공간 구석에 누워 쉬어 볼 생각으로 기둥을 잡으려는데 누군가 너의 자리는 여기 없다.”고 발로 허리를 차버린다.

 

   그리고 눈을 뜨니 몸의 고통이 다시 느껴지는 중환자실이다. 그러나 신비스럽게도 산소 호흡기 없이도 코로 청정한 공기가 들어오고 체온계는 40도를 훨씬 넘나드는데도 내 몸은 얼음골에 누워 있는 듯 너무 추웠는데 따스한 저승에서의 감촉이 현실에서도 전해졌다.

 

   이후 휠체어를 타고 중환자실 빈 공간에서 서서히 운동을 할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며칠 후 병실로 올라왔다.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5월 중순에 떠난 내 집으로 다음해 3월 하순에 돌아왔다. 비록 간병을 요하는 몸이지만, 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었던 내가 허무와 무상, 칼날 같은 고통을 배우고 살아서 왔다.

 

   지금 나는 집안에 파리가 한 마리 들어오면 며칠 놀다 없어지기에 그냥 두고 본다. 귀여운 외손자의 배설물 냄새에 개미가 들어와도 그냥 쓸어 밖으로 보내곤 한다. 미물도 인연 따라 왔다 가는 우리 집 손님이기에 잡아 죽인다고 없어질 것은 아닌 것 같다.

 

   지아비는 나보다 훨씬 늦게 불문에 귀의했지만 목탁까지 치며 법회를 진행하신다. 그리고 1년 동안 공부해 3회 포교사 시험에 합격하시는 등 불교에 몰입하신다. 평소에는 수저까지 들어 주어야 그것도 신문 보면서 식사하던 분이 이제는 옥상에서 큰 빨래는 말려 오고 설거지도 직접 하시면서 빚 갚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려.” 하신다.

 

   저승기행은 꿈이었다. 하나 현실과 차이가 없으니 경험한 자신을 이승사람에게 보시하기 위해서다. 삼라만상 어느 것 하나 존귀하지 않은 게 없다. 저승은 뜨거운 것도 아니요 무서운 것도 아니요 흑암바다에 빠진다 해도 찰나의 움직임이 있다. 불덩어리라고 했던 기둥을 안아 보니 따스한 예쁜 색채였다. 이승에서 어르신들께서 저승보관 창고를 얘기 하시는 게 바로 손바닥 크기의 나의 행위만 기록된 것을 말하시는 것 같다.

 

   나는 남보다는 조금 먼저 저승기행을 했다. 그로 인해 험한 불행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어왔다. 이제는 확실히 웃으며 저승사자를 따라 갈 수 있다. 그 때 더 자세히 물어 보았다면 더 쉽게 얘기 할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쉽다.

 

   나는 능엄경을 좋아해 크게 오차 없이 소화하고 있다. 가끔 죽어 가면서도 목숨을 담보로 기도에 들어가서 의문점을 보곤한다. 기도 시작과 함께 밥 한 공기를 3등분해서 물에 말아 먹고 반찬은 물김치만 먹는다. 그리고 새벽 2시에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촛불을 켜고 천수경을 음미하면서 읽는다. 읽기는 마치면 촛불은 끄고 향불만 켜놓은 상태로 관세음보살과 정근을 한다. 참회기도와 반야심경을 새벽 4시경에 끝낸다. 마지막 회향 기도 시간에 슬라이드 화면처럼 분명하게 직경 30cm, 정확하게 녹두알 크기의 향빛에서 원추형으로 벽면을 비춘다. 이때 나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본다.

 

   전부 내 탓이다. 타인의 탓이 하나도 없다. 한때는 백치처럼 달았던 여생에 지아비와 시부모를 원망하여 울며 통곡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았던 것이 저승길을 경험한 후 좋은 습으로 바뀌었다. 그림자는 나를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나와 동행하는 것이다.

 

   “보인다 안 보인다 할 뿐.”

출처 : 상민이의 불교 자료실, 법보시
글쓴이 : 상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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