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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韓)=조선의 기원과 정체성

황령산산지기 2019. 7. 13. 16:27

미산(美山)


    

한(韓)=조선의 기원과 정체성/미산 윤의섭


조선(朝鮮)이나 한(韓)이라는 글자도 3황5제 신화의 주인공 이름에서 흔적이 보인다.

3황은 복희 신농 황제, 5제는 소호, 전욱, 제곡, 제요, 제순으로 선사시대 신화기록이다.

인류의 지성이 고도화하면서 밝혀내지 못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냄으로써 그동안 머리

없는 역사의 부족함을 재구성하여 국가의 근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황하문명이라고

기록된 중국 역사, 그 이전에 존재한 것으로 현대에 밝혀진 동이 조선 주도의 요하문명을

중국의 원조 문명이라고 수정하는 중국 측의 과감한 역사수정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 복희, 제준(帝俊),

제곡(帝嚳), 제순(帝舜), 소호(少昊) 그리고 설(契) (은나라를 세운 탕 임금의 선조)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라고 고사변(古史辯)에

기록되어 있다.


진시황 이전의 개념인 삼황오제의 동이(東夷) 여부와 한민족은 관련이 없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인과 가야인은 그 조상을 소호 금천씨라고 했고,

고구려인은 그 조상을 전욱 고양씨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은 4300년 전에 있었던 중국의 삼황오제 시대가 바로 조선의 시대인 것이다.

이때 삼황오제의 시대를 연 분이 바로 신농(神農)이라는 것이다.

이 조선과 신농의 역사적인 관계는 금문(金文)의 해석으로 풀어진다.


1. 20c 초에 하북성 청원 남향에서 당우삼과병명(唐虞三戈兵銘)이라는 청동검 3자루가

발굴됐다. 이 칼에 신농의 손자 전욱(顫頊 高揚.BC2467~2421)과 그의 아들, 3대에 걸친

손자들의 이름이 있다. 전욱은 신농의 아들 희화 주와 황제의 딸 상아 사이에서 태어난

소호의 뒤를 이어 3대 왕위에 올라 78년을 재위했다. [1대 신농-2대 소호-3대 전욱]

전욱의 부는 창의(父昌意), 모는 창박(母昌僕=蜀山氏의 女)이다.


창의는 황제의 아들이고 전욱은 바로 황제의 손자가 된다. (황제-창의-전욱)

1번 칼에서 전욱을 나타내는 조일주(祖日珠)에 바로 ⌜조선의 조(朝)⌟자가 등장한다.

2번 칼에서 전욱의 자식 대를 나타내는데, 중부일계(中父日癸)는 전욱의 셋째 아들

중여 곤(衆餘 鯀)으로, 여기에서 ⌜조선의 선(鮮)⌟자가 등장한다.


3번 칼에서는 전욱의 손자들이 이름이 나오는데, 이중 형일계(兄日癸)에서 한국이라는

⌜한민족의 한(韓)⌟자가 나온다. 이 한은 바로 3황5제의 순임금을 나타낸다.

이 병명(兵銘)의 금문에서 조손(祖孫)의 3대를 해석해 낸 것은 중국 학자 락빈기이다.

 

2. 중국의 산동성 대문구에서 6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물레가락이 출토된다. 여기서도

'태산이 있는 산동성 곡부는 신농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곳이며, 이곳이 신농의 딸

뉘조가 누에를 치기 위해 양잠을 가르친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뉘조는 황제의 부인

이다. 즉 신농이 조선을 세웠다는 것이다.

 

3. 조선이라는 이름은 4300년 전의 ⌜산해경⌟ 해내경(海內經)에 동해지내(東海之內)

북해지우(北海之隅) 유국명왈(有國名曰) 조선천독(朝鮮天毒) 기인수거(其人水居)

외인애지(偎人愛之)라는 기록이 있다. '동해의 안쪽, 북쪽 바닷가에 조선이 있다.

하늘이 기르는 그 사람들은 구주(九州:九水)에 살며 모든 이웃을 사랑한다'는 홍익인간의

뜻이다. 4300년 전 중국 곡부에 조선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4. [시경](BC1000년 周代) 한혁편에 '한후(韓侯)는 주 선왕과 국경선을 논하였다.'

[잔부론] 氏性編(왕부는 후한 학자 2.000년 전)에 '시경에 나오는 한후는 연 동방의

나라(조선) 임금이고, 차츰 그 서쪽에서도 한 씨성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손

준왕은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로 건너갔다.' 이 3.000년 전 한(韓)은 중국 하북 요서

에 있는 조선(번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위씨조선이 철기 무장으로 강국이었으므로

한 무제의 침략(병력 5만)을 물리쳤다. 그 후 위씨조선 내부 토족 세력이 우거왕을

제거하고 낙랑과 현도로 분리하였으며, 한(漢) 측과 화의하였다. 낙랑으로 통합 존속

하면서 중원과 조선(고구려) 중간에서 철기문화 교류 거점이 되었고, AD 313년에

이르러 고구려에 통합된다. 한4군이란 중화사상의 영향과 초기 군현제를 모사 왜곡한

수식어일 뿐이다. 이 철기문화의 발달로 고구려와 중국 측 수당의 패권 전쟁이 일어

났다. 그후 대륙에서 동이계의 정복과 하화족 수성의 세력이 여러 차례 교차하였다.


5. 위의 몇몇 사례는 최근 역사학자들의 탐사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 내용이며, 또한

황하문명 이전의 요하문명에서 조선(동이계)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나는 5.000년 전

유적이 대거 발굴되며 고증하고 있는데 고고학과 인류학계에 놀라운 반응을 보인다.


 한, 중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동질성을 갖고 있다. 정통성을 놓고 고대역사의 왜곡으로까지

변질하고 있다. 금문과 갑골문에는 역사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정통성과 주체성이 무엇

인지에 대해 그 내용이 숨어있다. 전쟁, 왕위 계승, 신앙 제정일체, 지명 등이 기록되어 당시

의 사실을 이해하는 자료가 된다. 3황5제의 신화는 황하문명 이전의 요하문명의 주역 조선

(동이족)의 역사임이 금문과 갑골문자와 사서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중국 한(漢)대 이후 

중화사상(동이를 야만으로 폄훼)이 동이계 역사를 주류에서 지웠다. 동이계 문명에서 시원

창조되던 한문이 중국 문자로 자리 잡게 된 것도 이에 연유한다.

 

BC 5000년 전 동북아 태초에 발해만을 둘러싼 지역에 정착한 동이족이 건설한 나라가 조선,

한(韓)이다. 요하, 대문구, 평양 유적에서 드러난다. BC 2000년 전후 동북지역의 기후변화

한랭화로 말미암아 요하문명이 남하하는 이동이 일어나 황하문명을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

동이족에 의해서 상형문자, 한문자로 처음 만들어진 문자가 朝鮮, 韓이다. 이 글자 자체가

글자의 시조이기도 하다. 이 두 단어는 지명 또는 종족집단의 신앙(천손)지도자를 지칭하는

문자를 달리 표현된 하나이다. 단군임금 역시 제정(祭政)일치의 왕을 지칭하는 문자이다.

수천 곳에 달하는 고대 유적이 대부분 중국과 북한에 있음으로 관심 있는 탐사를 필요로 한다.

 

주(기주)에게 패한 은의 왕숙으로 귀순을 거부하고 조선(하남, 번한)에 망명한 기자는 하남 서하

에 살았고 무덤은 조현(산동), 사당은 기현에 있다. 이 지역 사상가일 뿐, 기자조선은 왜곡이다.

낙랑은 요서 발해만으로 흐르는 遼樂水와 白浪水(9水의 일부)의 낙랑을 딴 지역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서 위의 여러 맥락을 완곡하게 표현된 것이 보인다. 동이계 치우를 중국

3조상(황제 염제 치우)에 추존하는 과감한 결단을 보면서, 우리도 국조상을 당당히 설정하기를

기대한다. 이미 황하문명 이전에 신농, 전욱, 제순 같은 영명한 이름을 남긴 동이 조선 시대 지도

인물 아닌가? 요하문명을 건설한 경험이 있는 조선족과 중국 하화족이 융합하여 황하문명이

형성되었다. 동이(조선)의 일부는 요하에서 한반도로 남방계와 융합을 거치며 영역이 이전하였고,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존속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이해하면 국조 추존의 윤곽이 드러난다.

중화사상, 사대사상, 식민사관의 영향을 받아 동이 조선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일정부분 유목인시기의 구전문화가 매몰되며 문자시대에 진입하여 상고사가 지원진것 같다.

동북아 3국은 공영의 태도를 견지하여 인류 생태학적 진실의 역사를 창조하기를 기대한다.


한(韓)=조선의 연대표는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1)연대) 원조선ㅡ원마한(한반도)ㅡ진,옥저ㅡ 진한ㅡ 신라ㅡㅡㅡ고려(통일)ㅡ조선ㅡ대한

                                                      V 변한ㅡ가야ㅡ /

                                                      V 마한ㅡ백제ㅡ /

                    v원진한(요동 만주)-부여-원고구려-고구려ㅡ/발해/

                    v원번한(요서 하남)ㅡ위씨조선ㅡ최씨낙랑ㅡ/

                                                                 V 현도/

2). 시조                      

     단군 신농                 번한 준왕  위만    고주몽       대조영  왕건    이성계

            전욱                                        부여온조

            제순                                         박혁거세

                                                           김수로

........................................................................................................

1). 발해 황해로 흐르는 요하, 황하, 대동강 유역이 동북아문명 시원(始原)인 원조선의 강역이고,

한 중의 일정부분 같은 지역을 두고 조선족과 하화족이 융합 및 분리 형성된 연대표를 볼수있다.

2). 고대 일본 大和 궁정에 이야기꾼(語り部. 가타리베)을 두어 역사를 구전전승하는 직책을

두어 선사의 역사가 일본서기에 전래되어 있다.

3). 고려의 불교와 조선의 유교 정책은 대륙의 중화사상 춘추필법에 영향받아 구전계승한

동이 조선의 천손사상 샤먼무속 환인환웅 같은 고대인물에 관하여 저술한 역사서를 금서로

분류하고 관민이 못보도록 분서(조선왕조실록참조)하였다. 진시황의 갱유분서도 같은 맥락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