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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피라미드를 건설했는가

황령산산지기 2019. 6. 24. 18:32

누가 피라미드를 건설했는가

[SOH] 그리스 로마 시대 인류는 세계 최고의 건축물로 7개를 선정하였다.


그러나 현재 세기의 불가사의로 칭송받던 건축물들은 세월과 함께 거의 소실되었고 이집트의 대 피라미드만이 유유히 당시 문화의 휘황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높이가 146미터 바닥의 한 면 길이는 230미터이며 52,900 m2를 점유하고 있고 총 230만개의 석재가 사용됐으며 무게가 거의 7백 만 톤에 달한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참여했던 수학자 몽즈는 대 피라미드의 체적이 2백60만m3나 되며 이것만 갖고도 프랑스의 국경을 3m의 높이에 0.3m의 폭으로 둘러 쌀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대 피라미드 건축 시기는 기원전 2,000여 년으로 제4왕조 쿠푸(Khufu)왕 시대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다만 그리스 철학자 헤르도투스의 기록에 의한 것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이집트인들은 문자나 그림 등으로 대부분의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러나 신기의 건축 대 피라미드에 대해서만은 남아 있는 기록이 전혀 없다.

 

이로 인해 역사가들은 전설의 실마리를 가지고 추론하고 있으나 이 거대한 건축물의 과정과 목적 등 그 문화의 지혜는 아직도 불가사의로 남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결코 파라오의 무덤이 아니다


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피라미드가 시체를 빨리 탈수하여 미라를 가속하는 능력 때문에 파라오의 묘지와 관계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서기 820년 카이로 회교 총독 칼리프 알 아문(Caliph Al-Ma'mun)이 처음으로 통로를 뚫어 피라미드로 들어갔을 때 안은 꾸밈이 없는 수수한 방뿐이었다.

 

일명 왕의 석실 이라고 불리는 방 에도 매끈한 벽면에 단지 뚜껑 없는 석함 하나가 빈 채로 놓여 있을 뿐이다.


일부 사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도굴당한 것으로 결론지었으나 현실적인 면으로 추측해 볼 때 도굴자가 들어 올 수 있는 다른 통로가 없고 설혹 도굴 가능성을 놓고 보더라도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훔쳐 갈 수는 없으며 더욱 결정적인 것은 벽면에 장식이나 문자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대피라미드가 쿠푸 파라오의 분묘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건축의 정밀도


1880년대 말 근대 이집트학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피트리(William Flinders Petrie)는 피라미드의 가장 놀라운 점의 하나는 방위에 있다고 말했다.


각 방위의 모서리 선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며 각 방위의 오차는 5분(1도는 60분) 이내로 초 정밀도를 유지하고 있다.

 

건축의 수평의 정확도 또한 그 오차가 3.8cm에 불과해 현대적인 건축기술로는 그것을 따를 수 없다.


일반적 상식으로 대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기술수준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수 천 년의 발전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집트 역사 기록을 다 뒤져보아도 이런 기술의 발전 과정을 찾아 볼 수 없다.



누가 피라미드를 건설했는가?(2)


[SOH] 


비범한 기술


대피라미드의 역학적 구조는 매우 미묘하다.


수백만 개의 돌을 직접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서 만들 경우 하중을 견디지 못해 붕괴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나무의 나이테 구조와 유사한, 이를테면 버팀벽이라고 하는 하드웨어적 구조와 그것의 빈틈을 꽉 메우는 방식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구조는 대단히 안정적이어서 13세기에 있었던 대지진 중에도 피라미드의 외측 일부 돌이 붕괴되었을 뿐 전체 구조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3왕조는 말할 것도 없고 제 5, 6 왕조시기에 건축한 피라미드는 상대적으로 구조가 조잡하며 그나마 지금은 많은 것이 완전히 붕괴되고 소실되었다.


또한 평균 2.5톤이나 되는 거석 2백만 개 이상의 돌을 어떻게 지면으로부터 100여미터나 되는 높이에  옮길 수 있었는가? (그 뿐 아니라 왕의 석실에 사용된 돌은 크기로 보아 50톤 이상의 것도 있다.) 이에 대해 이집트학 전문가들은 30여종의 건축방법으로 건축과정을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피라미드에 몸소 올라가 본 그레이엄 핸콕은 그런 가설에 따라 피라미드가 건설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며 그는 이렇게 높고 높은 곳에서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소형 승용차의 두 배나 되는 거대한 돌을 하나하나씩 아래로부터 위로 운반하여 정확한 곳에 위치를 맞추어 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 피라미드의 건설시 사용한 거대한 돌의 초정밀적인 측량, 정확한 건조기술을 현재 기술의 건조방식으로 진행했다면 인부들과 현장 감독에게는 견딜 수 없는 혹형이었을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대 피라미드가 보여주는 지혜로 볼 때 고대 건축자의 건축방식은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 말했다.


대 피라미드가 다른 피라미드에 비해 기술이 월등한 점은 높이 20cm, 폭 22cm의 천체창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천문학자 트림블은 남쪽의 환기구멍이 기원전 2600년에서 2400년경의 오리온자리 세별에 정확하게 조준돼 있다는 것을 발표했다.

 

이것을 근거로 환기 구멍은 천체창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실제로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에서 완성된 천체창은 대피라미드에만 있다.


현대 기하학의 요람이 이집트라는 설은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현대 이집트학의 아버지’ 로 불리는 프랑스의 샹폴리온(Jean-Francois Champollion)은 이 고대건축가를 '그들은 30미터 키의 거인과 같이 한 수 위의 생각을 갖고 있다' 고 표현하고 있다.


전통적 관점에서는 많은 의문점이 있고, 역사적인 사료는 찾기 어려워 일부 현대과학자는 지질학, 고기후학 등의 방법을 이용하여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를 연구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사전문명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누가 피라미드를 건설했는가?(3)

[SOH]


사전문명으로 추측


스핑크스 역시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


스핑크스의 높이는 20여m, 전체 길이는 73.5m이며 제 4왕조 카프레왕 때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수학자 겸 이집트학 학자인 쉬왈러 루비츠(Schwaller de Lubicz 1891-1962)는 그의 유명한 저서 ‘무서운 과학(Scared Science)’에서 피라미드와 관련된 여러 수학적 특징을 찾아냈다.


대표적인 것은 높이와 둘레의 비가 정확하게 4p(원주율)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스핑크스의 침식 정도로 보아 기원전 1만년 이전의 대홍수와 이어진 큰 비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집트 학자 존 웨스트(John Anthony West) 역시 이 이론에 동의하여 풍화작용설을 부정했다.


만약 풍화의 침식작용이라면 동 시대의 다른 석회암 건축물도 비슷한 정도의 침식이 있어야 하지만, 다른 건축물은 스핑크스처럼 심하게 침식되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바람과 모래에 의한 침식은 수평으로 자국이 남아야 하는데, 스핑크스에는 수직적인 침식이 있어 바닷물에 의한 침식임을 주장했다.


보스턴 대학의 지질학 교수이자 암석 침식 전문가인 로버트 쇼치(Robert Schoch) 역시 스핑크스의 침식된 곳들의 깊이가 서로 달라 오랜 시간 동안 격렬한 비바람에 맞아 생긴 흔적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쇼치 교수는 기원전 3천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자지역은 내내 사막이어서 스핑크스에 침식흔적을 남길 만큼의 비가 오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스핑크스의 침식된 상태를 설명하려면 반드시 기원전 1만 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3년 독일 엔지니어 루돌프 간텐브링크는 자신이 만든 소형 로봇을 이용해 처음으로 피라미드 내부를 탐사했으나 중심부에서 64m 올라간 뒤 두 개의 구리 핀이 박힌 석회암 판으로 가로막혔다.


이후 9년 뒤인 2002년 이집트 유물 당국은 로봇의 남쪽 통로 탐사 장면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기도 했으나 역시 64m을 나아간 뒤 석회암 판 앞에서 멈췄다.

 

이 문은 `간텐브링크의 문'으로 불리는 이전 판과 같이 두 개의 구리 핀으로 장식돼 있었다.


그런데 2011년 이집트와 영국 등의 국제 연구진은 대피라미드 안에 들여보낸 로봇이 전송한 사진을 분석한 끝에 붉은 염료로 그려진 상형문자들과 이른바 `비밀의 문'으로 불리는 문 중 하나에 박혀 있는 구리 핀 2개의 상세한 모습을 발견했다고 이집트 고고학 연보(ASA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뜻밖의 장소에서 상형문자들이 발견됨으로써 새로운 의문들이 제기됐다면서 이런 표시와 벽화들을 이용해 아직 아무도 풀지 못한 피라미드 건축의 비밀을 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세인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영국 리즈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로봇은 지금까지 여러 탐사팀이 시도했던 것보다 더 먼 곳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구석구석을 샅샅이 둘러볼 수 있는 뱀 모양의 마이크로 카메라로 내부 사진을 촬영했다.


이 로봇에 의해 기자 평원에 세워진 세 기의 대피라미드 속에서 무성한 추측을 낳고 있는 숨은 통로들이 세상속으로 드러날 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또한 일부 과학자들은 스핑크스와 함께 대피라미드를 ‘사전문명’이라는 관점에서 대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보기에 다소 ‘독창적’으로 보이는 논점이라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연구해가면 장래에는 인류가 대 피라미드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