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망각과 기억 사이
[이 아침에] 망각과 기억 사이
새해 달력을 받으니 한 해가 그냥 달아나 버린 것 같다. 분주했던 나날을 정신없이 지나고 보니 쌀 항아리가 비어가는 줄도 몰랐다. 오랜만에 한국 식품점이 있는 윗동네로 길을 나섰다. 일찍 어스름이 내리고 어디선가 나무 타는 냄새에 산자락에 자리한 마을은 다르구나 싶었다. 운무에 싸인 먼 산 하늘가에는 옅은 노을이 번지고 초승달이 예쁘게 떠 있었다.
해 질 녘이면 집집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기억이 평화롭다. 퍼뜩 쌀 사러 온 일은 까마득히 잊었음을 알아차렸다. 이미 집으로 돌아가는 프리웨이를 달리고 있는 한심한 나를 만났다. 차에 가득 내려앉은 재를 닦으며 그제야 낙엽 타는 근사한 내음이 아니라 집 근처 그리피스 파크에 산불이 났다는 현실로 돌아왔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일상의 고단함에 갈래진 심란한 마음은 곧잘 망각 속에 빠져 버린다.
새날이 밝으면 하루를 잘 살겠노라는 아침 기도의 결심은 분주함 속에 묻혀 버린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많은 순간 허언을 남발하며 살았다. 기도의 빚쟁이는 하루에 한 사람씩, 특별한 지향으로 기도와 정성어린 행위로 하루를 봉헌 드린다. 그러노라면 잊는 일이 다반사라 하여도 일 년이란 시간이 그냥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함께 나누는 친교의 마음자리인 코이노니아(Koinonia 친교, 소통)는 감사의 첫걸음이다.
세파에 휩싸인 번잡스러움과 욕심, 나를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은 감사와 동행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애심은 우리보다 15분 후에 죽는다'는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의 말씀에 나를 잊는 거룩한 망각이기를 의탁 드린다.
우리가 행복하기만을 바라시는 신의 선물을 기억하는 일이 감사의 마음을 샘솟게 하는 마중물이다. 또한 기억은 사랑이요 그리움이다. 뜻밖의 부음이 많았던 요즘, 남겨준 사랑을 기억하며 영원한 안식을 주시라고 돌아가신 영혼을 위한 연미사 봉헌을 드렸다. 고향을 떠난 나그네는 애별리고의 아픔으로 망각의 강을 건넌다.
샌후안 카피스트라노 (Mission San Juan Capistrano) 미션을 방문하고 우연히 바닷가 작은 공원에서 선셋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행운을 만났다.
저문 날 새들이 날아드는 언덕의 나무들, 한 생의 끝이 불에 타서 재가 되어도 향기를 남겨주는 나무를 닮았으면 좋겠다. 어둠 속에서 아기 산토끼가 눈을 반짝이고 있다. 파도 소리와 해넘이를 오래도록 구경하느라 쌀은 오늘도 못 사왔다.
망각과 기억을 오가는 사이 아름다운 우주에 쏟아지는 무량한 은총의 빛살은 변함없이 찬란하다. 그사이 반달이 된 상현달의 포근한 달빛이 지상에서 천국을 살아가라고 다독여 준다. 무한한 사랑에 잠기듯 바다에 안기는 일몰이 전하는 묵언의 인사를 듣는다. "다시 만나요! (See you again)"
[LA중앙일보] 발행 2018/11/26 미주판 18면
자꾸 어둠이 내려 오네요 | 햇님도 달님도 원심은 하양입니다 |
슈베르트 / 저녁노을 (Im Abendrot, D799)
Dietrich Henschel(baritone) & Barbara Bonney(s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