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피닉스 저널...
http://blog.daum.net/truthinlight
피닉스 저널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여러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한꺼번에 다 올리면 읽기 어려우니 우선 조금만(?) 올려보겠습니다.. ^^
플레이아데스 커넥션 中
인간은 언제나 ‘영적으로 위대하며, 건설적인[spiritually great and constructive]’ 존재입니다. ‘모든 무한한 창조적 구성체[all the infinite Creational build-up]’인, ‘영혼[The Spirit]’은, 인간 자신의 가장 내밀한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은 그저 각종 한계들로 가득 찬 존재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직 자신의 틀이자, 한계를 띤 물질적 육체로서, 물질적으로만 표현된 것입니다. 이는 노동과 고통의 원천이자, 인식과 의지에 있어서 한계를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한 존재가, 물질적인 시각을 가지고서, 자신의 내면의 존재를 바라다 보려 할 때, 그는 오직 ‘형태와 모양’만을 관찰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영적인 인식의 눈[the spiritual eyes of cognition]’을 뜨고 바라다 볼 수 있다면, 그는 자신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밝혀 보여주는 의식[all-revealing consciousness]’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되고, 또 이러한 ‘의식’이 비단 자기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 속에도 내재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타인들이 이를 모르더라도, 그는 아는 것입니다. 그 때, 이 자는 자기 주위의 모든 생명체들과 창조물들을 대함에 있어서,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 때의 그는, 단순히 다른 남자나, 여자, 혹은 아이들을 바라다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지닌 존재들[carrier of Spirit]’로서, 그들 각각을 ‘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것들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는 이들 영혼들, 오직 기회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스스로의 모습을 타인에게 드러내 보여주기를 바라는 이들 영혼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물들을 다 박탈당한 채, 고국에서 추방되어 쫓겨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안에 내재해 있는 영혼을 그로부터 추방할 수는 없습니다.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中
전 비기독교인 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ㅠㅠ
적들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종교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기만적인 가르침들입니다. 이들은, 소위 당신들이 ‘성경[Holy books]’이라고 부르는 책 속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진실[God’s Truth]’을 함부로 변조시켜, 인류로 하여금,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처럼 여겨지는 하나님을 상상해 내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들 각자 각자 안에 내재해 계신 분으로서 ‘그 분과의 회합[communion with GOD]’ 속에서 그 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지만, 적들은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아, 수백만 명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 분에 대한 ‘앎[knowing]’ 속에서 얻게 되는 ‘개인적인 권능[personal power]’을 박탈하고 무력화시켜 온 것입니다. 아직도 여전히 당신들의 성경 속에서 ‘진실’이라고 언급되는 내용들은, 인류에 의해 전적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하나됨[THE on E]’에 대해서 이야기한 다음 구절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
요한복음 제 14장 6-21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너희가 듣고 있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가 하는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와의) 하나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리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 말했을 때, 나는 오직 ‘나’만에 국한해서 언급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들 속에, 실로 모든 것들 속에 계십니다[THE FATHER DWELLS WITHIN ALL...ALL...ALL]. 우리 모두는 ‘그 분의 은총[His Grace]’과 ‘그 분의 마음[His Mind]’과 ‘그 분의 생각[His Thought]’ 덕택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 안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과 진정한 회합을 갖게 될 때, 그리고 당신이 오직 ‘그 분의 뜻[His Will]’에만 봉사하고자 할 때, ‘그 분의 지혜[His Wisdom]’와 ‘그 분의 지식[His Knowledge]’과 ‘그 분의 권능[His Power]’은 바로 당신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당신 안에서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의 지식[KNOWLEDGE OF GOD WORKING WITHIN]’이 밝혀주는 ‘그리스도적 방식[Christ WAY]’을 통해서, 당신은 내가 한 것과 같은 기적도, 또 그 보다 더 큰 기적도 이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들은 내가 남긴 말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변질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요컨대, 적들은, 하나님이 저 멀리 어딘가에서 저마다 지은 죄에 대해 당신들에게 벌을 내리려고 단단히 벼르고 계신 분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인간들[God-Fearing people]’로 만들어 온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적들은 대단히 교활한 술책을 사용하였는데, 바로 사도 바울의 복음서[the gospel of Paul(Saul of Tarsus)]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들이 지은 죄(잘못)[YOUR sins(errors)]’에 대한 대속(代贖)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어 피를 흘렸노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펼쳤던 이유는, 바로 당신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당신들의 구세주[your savior]’라고 믿게 만들고, 나아가 “천국[Heaven]”으로 들어가고 싶거든, 그들이 제시하는 ‘몇 가지 규칙들’을 따라야만 하노라고 당신들을 윽박지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을 아는 것[KNOW God]’에 대한 언급도, ‘그리스도적인 길[Christ WAY]’에 대한 가르침도 없었습니다. 오직 ‘우리가 여기 진실이라고 기록해 둔 것들만을 믿으라’고 가르쳤는데, 거기 나와 있는 내용들은 ‘소위 말하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왕들이 진실인 것으로 판별했으니, 응당 진실’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적들이 한 일과 관련하여, 내가 바로 잡고 싶은, 잘못된 개념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오늘날 이들은 이 물질적인 세상의 통치자들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인간들이 가진 두려움과 육체적인 욕망, 그리고 의존성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통치자들이 되는 일을 인간들이 허용하도록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적이, 자신의 창조주인 하나님[GOD, HIS CREATOR]보다 더 많은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인간들이 자신들이 가진 ‘하나님의 권능과 지식[God-power and knowledge]’에 대한 무지상태 속에 머물러 있는 채로, 적들에게 통제력을 넘겨줬을 뿐인 것입니다.
당신들이 소위 ‘성경[Holy Bible]’이라고 부르는 여러 가지 판본의 책들 전반에 걸쳐, 내가 남긴 말들은 난도질 당했고, 삭제되었으며, 조작되어 왔습니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 온, 이 ‘성경’이라는 하나의 책자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왔으며, 그들이 실상 ‘영적인 가난과 무지상태[spiritual poverty and ignorance]’ 속에 머물도록 유도해 온 것입니다. 성경은 누누이 계속되어 온 가필과 조작 속에서, 너무나 많은 미신적인 내용과 독단적인 교리들을 담게 되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이 이 거짓 서적을 진실이 담긴 책인 줄 알고, 사서 보는 것입니다!
오스카 레비(유태인)의 편지 中(1920년)
이제 많은 유태인들은 당신의 이처럼 노골적인 관점들에 대해 당신을 중상모략하고 괴롭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비난의 합창에 동참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보다 저는 당신의 생각과 당신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또 이미 잘 이해한 지금으로서는--저는 제가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만--이 맹렬한 인종이 종종 가해 올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당신을 방어해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선적으로, 저는 이 부분을 지적해야 될 것 같습니다. : 바로 근대 유럽에서 발생한 사건들 가운데, 유태인들로 소급될 수 없는 사건은 거의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끝난 것 같아 보이는 대전쟁[1차 세계 대전을 지칭—역주]을 예로 들어 봅시다. 전쟁의 명분과 전쟁의 이유가 무엇이었던 것인지를 자문해 보십시오. : 당신은 바로 그게 민족주의였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당신은 이내 대답하게 되기를, 그러한 민족주의는 당신이 우리에게 이미 입증해 보여 주셨듯이, 국제적인 사조들의 창안가들이었던 유태인들과는 실상 전혀 관계도 없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비단 볼셰비즘의 황홀경이나 국제금융의 횡포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적 아집(제가 이걸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면)도 궁극엔 유태인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그들이 ‘선택받은 민족’의 신화를 만들어내지 않았고, 이러한 강박관념이 모든 현대 국가들의 정치적 신조의 일부 또는 단편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럼, 이것이 사소하고 대수롭잖은 것일까요? 민족주의의 역사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민족주의는 우리 시대에 시작되었고, 나폴레옹에 대한 반발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 그런데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에 적대적이었습니다. ; 프랑스 혁명은 종교개혁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 그런데 종교개혁은 조악한 기독교주의에 바탕했던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기독교주의는 바로 유태인들에 의해 발명되고, 웅변되고, 선전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바로 유태인들이 지금의 이 전쟁을 만들어 내기도 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제발 이게 그저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냥 농담으로 하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바로 이 뒤에 거대한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후로 생겨난 모든 사조들, 운동들은 그 근원을 추적해 보면 항상 유태인들로 거슬러 올라가게 마련입니다. 이는 바로, 유태인들의 아이디어라는 것이, 결국엔 우리의 이 명백히 비종교적으로 변모된 세상을 정복하고, 완전히 그들의 발아래 이를 굴복시키고자 하는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당신은 유태적 요소들이 현 세상의 정신적, 물질적 파탄을 이끌어 낼 목적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양쪽 모두에 걸쳐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했노라고 경종을 울리며 지적했습니다.(‘볼셰비즘 & 시오니즘’ 참조--역주) 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당신은 이런 모든 비정상적인 행위들이 유태인들의 강렬한 이상주의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심오한 통찰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당신은 완벽하게 옳습니다. 한가지 사고에 사로잡힌 유태인들은, 튜튼족들이나 앵글로 색슨족들이 그러는 것처럼, 어떤 엄격한 비밀주의에 입각한 노력의 수준을 이미 지나치게 훌쩍 뛰어 넘어버린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아예 자신들의 머리 속 좌뇌는 반대쪽 우뇌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에 이른 것입니다. ; 또 한편 유태인들은 러시아인들처럼 한번 자신들이 이야기한 것을 행동에 옮기게 될 것 같으면, 우선 자신들이 지지하는 사조로부터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한 연후에는, 확고부동하게 받아들여진 그들의 원칙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입니다. 의심할 나위도 없이, 바로 이러한 특성으로부터 그들의 신비에 가까운 추진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이 추진력에 대해서 당신은 우선은 물론 비난을 하시겠지만, 볼셰비키들을 예로 들어 볼 것 같으면, 그들의 놀라운 집착에 당신조차도 경탄해 마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유태인이든 아니든, 우리가 크리스챤이든 아니든, 그들의 집요한 추진력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오늘날의 유태인들이 그들의 원형 속의 유태인들과는 같지 않기 때문에, 최근에 보인 유태인들의 모습과 비근한 예가 역사상에 나타나 있지 않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심지어 오늘날에 조차도, 오히려 과거보다 더 혹독한 결말을 맞게 될지언정 그들이 그들의 대의를 따라 나아가기를 멈출 것이라고 보십니까? 지난 독일에서의 전쟁에서 누가 사람들을 선동하였습니까?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e](성경상의 ‘본디오 빌라도’--역주)조차도 의아해 했던 사실에 대해서, 누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재차 주장했었습니까? 누가 정치에 있어서 정직함과 청렴결백을 주장했습니까? 바로 그 정직함이란 그저 오늘날의 경험 많은 ‘집정관들’의 입술에 영악한 미소만을 더해 줄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했던 많은 작가들, 그들 대부분이 유태인들이었습니다. : 프리드[Fried](알프레드 헤르만 프리드[Alfred Hermann Fried], 1864-1921, 저널리스트, 평화운동가--역주), 페르나우[Fernau], 라츠코[Latzko], 리처드 그렐링[Richard Grelling]--“J’accuse : 나는 고발한다”(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을 다룬 내용.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에밀 졸라[Emile Zola]의 ‘J’accuse’와 구별요--역주)의 저자. 바로 이러한 이상과 원칙들을 위해서 누가 죽임을 당했고, 또 누가 자신들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까? 바로 다름 아닌 유태 핏줄의 남자와 여자들이었습니다. : 하스[Hasse], 레빈[Levine], 룩셈부르그[Luxemburg](로자 룩셈부르그[Rosa Luxemburg], 1870-1919, 막시스트 혁명가--역주), 란다우어[Landauer](구스타프 란다우어[Gustav Landauer], 1870-1919, 무정부주의자--역주), 그리고 바바리아주 수상이었던 커트 아이즈너[Kurt Eisner](1867-1919, 정치인, 사회주의 저널리스트--역주). 모세[Moses]로부터 마르크스[Marx]에 이르기까지, 이사야[Isaiah](B.C. 8세기, 유태인 예언자--역자주)로부터 아이즈너[Eisner]에 이르기까지, 실제와 이론에 있어서, 이상주의와 물질주의에 있어서, 철학과 정치에 있어서, 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전의 모습 그대로인 채, 그들의 길을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 그들의 대의와, 그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바로 그들만의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자신들이 흘릴 수 있는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언제나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아니, 기꺼이 바쳐 왔던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들은 모두가 잘못된 것들이다. 그들이 세상을 어디로 이끌어 왔는지를 보라. 이제는 그들이 지난 3000년간 저질러온 잘못들에 대해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얼마나 더 오랫동안 당신은 그들이 우리에게 끼쳐온 해악들이 계속되는 상황이 방치되길 바라는 것인가? 유태인들이 세상을 재앙에 가깝도록 이끌어 왔는데, 지금 우리가 처하게 된 난국으로부터 벗어나 보자는 주장을 어떻게 (유태인인) 당신이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저는 오직 한가지 답변만을 드릴 수 있을 뿐이며, 그 답변이란 : “당신이 옳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당신의 비난이야말로--제가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서--당신이 가진 반-유태주의의 근저가 되는 것이며, 또한 너무나도 잘 정당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공감대에 바탕하여 저는 오히려 당신에게 악수를 청하고 싶으며, 인종적 증오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이유로 당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들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 만약 당신이 반-유태주의자라고 한다면, 유태인인 저,, 저 역시 또 한 명의 반-유태주의자이며, 그 어떤 반-유태주의자보다가도, 심지어 당신보다가도 더 노골적인 반-유태주의자입니다.. 우리 유태인들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친애하는 자여, 우리는 정말이지 가장 무거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들 가운데, 3000년 전에 저지른, 혹은 2000년 전에 저지른, 아니 단 100년 전에 저지른 잘못들 속에는, 혹시라도 최소한 일말의 진실성이라도 들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들 속에는 오직 오류와 광기 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광기는 더 큰 비참함과 더 광범위한 무질서 상태를 낳게 될 뿐인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을 당신에게 고백합니다. 공개적으로, 진심으로, 그리고 슬픔을 안고서 고백합니다. 구약 시편의 작가[Psalmist](다윗왕으로 전승됨--역주)가, 오직 그만이 오늘날 이 불타오르는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고 비탄에 잠기게 될지도 모를, 바로 그 분이 느끼게 될 그러한 비참함과 깊은 슬픔을 안고서 고백합니다. 우리 유태인들, 이 세상을 위한 구세주들이라고 주장하는 우리들, 바로 또 그 진정한 “구세주(예수)”를 배출했노라고 자랑하기조차 해온 우리들, 그런 우리들은 오늘날 이 세상의 사기꾼들이자, 파괴자들이며, 방화범들이자, 사형집행인들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새로운 천국으로 인도하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만, 우리가 당신들을 정작 인도한 곳은 새로운 지옥일 뿐이었습니다.. 어떠한 진보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최소한의 도덕적 향상도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진보’라고 주장되는 것 속에 있었던 것이란 단지 우리들의 명분 뿐이었고, 오직 나빠지기만 할 뿐인 이 ‘거짓된 진보’는, 폐허가 된 세상의 재건 과정 속에서도, 다가올 미래의 모든 순간 순간들 속에서도, ‘진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세상을 바라다 봅니다. 그리고 이 소름끼치는 장면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 이런 무시무시한 장면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써온 자들에 대해 제가 더 많이 알면 알게 될수록, 저는 더더욱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 언론 통제사 中 시온 의정서(시온 지도 장로의 탈무드 의정서와 선언)[TALMUDIST PROTOCOLS OF THE ZIONIST ELDERS OF WISDOM AND MANIFESTO] 제 2프로토콜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우리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가능한 한 전쟁은 영토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 아래 치러져야만 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각 국가들은, 우리가 우리의 지배적인 힘을 바탕으로 그들을 돕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또 전쟁을 치르고 있는 양쪽 모두의 운명이 결국 우리의 ‘국제적 대리인들[international agentur]’, 바로 부에 관한 한 백만 개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그 어떠한 제약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이들 ‘대리인들’의 자비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때 우리의 ‘국제적 권리’는, 적절한 권리 개념하에, 각국이 보유한 권리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게 될 것이고, 제 각각의 나라들이 저마다의 민법에 근거하여 국민들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을 통제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각국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각국의 관리자들은, 우리가 그 국민들 가운데 노예 근성적 복종심이라는 요건을 엄격히 갖춘 자들 중에 선발하는 자들이 될 것이며, 이들은 진정한 통치술을 갖추지는 못한 자들로 구성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 전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잘 통제해 나갈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잘 교육시키고 후원해 온 학식과 천재성을 두루 겸비한 우리의 참모들과 전문가들 손 아래에, 이들은 손쉽게 우리 게임의 졸들로 전락할 것이다. 제군들도 잘 알다시피, 우리의 전문가들은, 우리의 정치적 계획으로부터, 그리고 역사적 교훈으로부터, 또한 매 순간순간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한 엄밀한 관찰로부터 얻어진 정보력을 보유한 자들로서, 고이들[goyim]이 통치를 위해서 꼭 필요로 하는 이 정보들을, 그들에게 맞게끔 잘 조정해 나가는 자들이 될 것이다. 고이들은 편견없는 역사적 관찰로부터 얻어지는 것의 실질적인 적용에 따라 가이드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당연한 결론에 대해 아무런 비판적 식견도 못 갖춘 채, 단순히 이론적이고 일상적인 습관에 따라서만 행동해 나간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설명해 줄 필요가 없다. 단순히 종료 시간이 될 때까지 그들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기만 하면 되고, 멋진 여가시간을 보낼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해주면 되며, 혹은 그들이 즐겼던 어떤 것에 대한 기억 속에 머물러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들을 잘 설득시켜, 그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주요 역할을 순조롭게 해내서, 그것이 마치 ‘과학적 언명 (이론)[the dictates of science (theory)]’인양 그들이 자연스럽게 수용하게끔 만들면 된다. 바로 이러한 목적성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언론 매체를 통해서, 그들 사이에 이러한 이론에 대한 맹목적 신뢰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고이들 가운데 지식인들은 스스로 식자인 양 잘난 척 하지만 어떠한 논리적인 검증력도 갖추지 못한 자들로, 각종 학문에서 활용 가능한 정보들을 엮어 맞춰 그럴 듯해 보이는 걸 내놓게 되겠지만, 그러한 것들도 결국,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끌어 나갈 목적으로, 우리의 대리인 전문가들이 미리 교묘히 짜맞추어 둔 것이 될 것이다. 잠깐이라도 이러한 진술들이 공허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추정하지 말라. : 다위니즘[Darwinism], 막시즘[Marxism], 니체이즘[Nietzsche-ism]과 같이 우리가 조정해 온 성공적인 사례들에 대해 주의깊게 생각해 보라. 어쨌든, 우리 유태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사조들이 고이들의 마음 속에 분열을 싹틔우고 분열을 조장해 왔다는 측면에서 볼 때, 얼마나 큰 중요성을 가졌던 것인지를 확인해 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정치적 오류나 정책적 방향성의 오도를 피하기 위해, 각 나라 국민들이 갖는 생각, 특성, 경향 등을 면밀히 고찰하는 일은 필수불가결한 작업이다. 우리 시스템의 위대함은, 그 구성 요소나 부분들이, 각 나라 국민들의 기질에 맞춰서, 우리 목적에 따라 가변적으로 취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과거의 교훈들의 종합이, 현재의 상황에 맞춘 실질적인 적용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성공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오늘날 각 국가들에 있어서, 사람들 간의 사고의 흐름을 형성하는 위대한 힘은 바로 언론이다. [하톤: 글이 쓰여질 시점에는 텔레비전이나 기타 발전된 언론 매체들이 없었던 시절임을 기억하십시오.] 언론의 역할은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항들을 계속적으로 지적하고, 사람들에게 불만의 목소리를 제공하며, 그들 간에 불평이 생겨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의 위대함이 구체화 되는 곳이 바로 언론이다. 그렇지만 고이의 국가들은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지 못한다. ; 따라서 이 힘은 우리 손 안에 굴러 들어 온 것이다. 언론을 통해서 우리는 강력한 영향력을 얻게 되었지만, 정작 우리 자신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것이 피와 눈물의 바다로부터 얻어 낸 것이기는 하지만, 언론 덕택에 우리는 손에 금권을 쥐게 되었다. 비록 우리가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우리는 대가를 얻은 것이다. 우리 쪽의 각각의 희생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 사람당 천 명의 고이들의 몫에 해당하는 것이다.[하톤: 학생들이여, 여기 나와 있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게 누구일 것 같습니까? 그럼 그렇겠지요.]
시온의정서 또다른 요약본..
1. 매 백 년마다 우리 이스라엘의 현자들[the Sages of Israel]은, 여호와[Jehovah](‘기록되지 않은 역사’ 참조--역주)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세계지배, 그리고 적들--기독문명--에 대한 우리 정복실태의 진척상황을 검토하기 위해 산헤드린[Sanhedrin](정치, 종교, 사법 등을 총괄한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23명의 지역 대표들이 참석하는 유태인들의 집회(의회)로, 대집회[the Grand Sanhedrin]에는 총 71명이 참석. B.C.191년(그 이전에는 고위사제가 담당)부터 열리기 시작하여 ‘일반에게 알려진 마지막 집회’는 A.D. 358년(이후 로마제국의 탄압으로 해체)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역주)을 열어 왔다.[하톤: 간결하게 정리된 요약본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자, 1991년이 끝나가는 오늘날 당신들의 상황을 한 번 체크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글을 읽어 나가다 발견하게 될 몇몇 사실들에 직면하기에 앞서, 가서 구토물을 담을 주머니를 하나 챙겨 오십시오.] 2. 올해(1869년--역주), 우리의 존경하는 시메온-벤-이후다[Simeon-ben-Ihuda](1489년 사망한 랍비. 당시 그의 장례식과 그랜드 산헤드린[the Grand Sanhedrin]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역주)의 무덤 앞에 모인 우리들은(1869년 프라하에서 가진 대집회(그랜드 산헤드린)--역주), 지난 1세기 동안 우리가 우리의 목표 달성에 보다 근접했으며, 이 목표는 머지않아 완수될 것이라는 사실을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3. 금[GOLD]은 지금껏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늘 그러하겠지만, 불가항력적인 힘을 갖는다. 전문가의 손으로 다뤄질 때, 금은 그 소유자에게 있어서 항상 가장 유용한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갖지 못한 자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금으로 우리는 가장 ‘저항적인 양심가’의 마음도 살 수 있으며, 모든 가치들의 수준도 조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산물의 거래가격도 결정할 수 있다. 또한 금으로 모든 국가들에 차관을 제공하고, 이 국가들을 우리의 자비아래 종속시킬 수 있다. 4. 이미 주요 은행들, 전 세계의 환시세, 그리고 각국 정부에 대한 채권은 모두 우리 손 안에 있다. 5. 또 다른 주요 권력은 언론[THE PRESS]이다. 끝없이 어떤 사안들을 반복적으로 언급하여, 언론은 인간들이 그러한 문제가 실재하는 일인 양 받아들이도록 만들 수 있다. 연극 또한 유사한 기능을 갖는다. 언론과 무대가 있는 모든 곳에서 우리의 명령은 늘 관철된다. 6. 민주주의 원칙들[DEMOCRATIC RULE]에 대한 끝없는 찬양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인들을 정견을 달리하는 정당(세력)들로 분리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 국가의 단일성을 파괴시키고 도처에 불화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것이다. 무능력자 수준으로 그들의 역량이 감소되었을 때, 그들은 ‘우리의 은행의 법칙[the Law of Our Bank]’ 앞에 굴복하게 되며, 항상 이 법칙 아래에서만 통일성을 보이며, 우리가 갖는 대의[Cause] 앞에 늘 헌신하게 될 것이다. 7. 우리는 기독교인들의 자부심과 어리석음을 잘 이용하여 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아야 한다. 그들은 서로서로를 학살하게 될 것이며, 그 위에 우리 민족이 잘 자리잡을 수 있는 터를 깨끗이 다져 놓게 될 것이다. 8. 땅을 소유하는 일은 우리에게 항상 힘과 영향력을 가져다 주어 왔다. 사회 정의[social Justice]와 형평[Equality]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거대한 땅을 잘게 조각내야 한다. ; 그리고 이 조각난 땅들을 갖고 싶어 안달이 난 농부들에게 나눠 줘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곧 경작 비용으로 인해, 우리의 빚쟁이들로 전락하게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토지 자본은 우리가 그들의 주인이 되게 만들 것이다. 우리 차례가 왔을 때, 우리는 대지주들이 되는 것이며, 땅의 소유는 우리의 권력을 확고히 보장해 주게 될 것이다. 9. 금의 유통을 종이 화폐로 대체하는 일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 금은 우리 품 안으로 흘러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종이의 가치를 규제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결국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든 주인이 될 것이다. 10. 우리는, 열정을 가진 척 하는 데 능숙하고, 폭도들을 설득시키는 데도 뛰어난 역량을 가진 많은 웅변가들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사람들 사이에 퍼뜨려, 인류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변화에 대해 설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금과 아첨을 잘 활용하여, 우리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들을 포섭해야 하며, 이들은 결국 기독 자본주의[Christian capitalism]를 절멸시키는 일을 도맡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감히 꿈꿔 보지도 못한 임금을 약속해야 한다. 그렇지만, 또한 생필품들의 가격도 지속적으로 올려야 하고, 이렇게 할 때 우리가 갖는 실질 이득은 늘 더 커져갈 것이다. 11.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혁명을 준비해야 한다. 이 혁명은 기독교인들 자신들이 만들어 내는 혁명이 될 것이나, 그 열매는 결국 우리가 거둬 들이게 될 것이다. 12. 그들에 대한 우리의 조롱과 공격을 통하여, 우리는 그들의 사제들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고 또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인간들로 만들어야 할 것이며, 그들의 종교 역시 사제들만큼이나 우스꽝스럽고 불쾌감을 주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들 영혼의 지배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들의 종교와 우리의 숭배 의식에 대한 독실성을 표현해 보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종교의 우월성과 우리 영혼의 우월성을 입증해 보여야 할 것이다. 13. 우리는 이미 사회의 모든 중요한 자리에 우리 사람들을 갖다 앉혀 두었다. 우리는 고이들[Goyim]에게 변호사와 의사들을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 변호사들은 오늘날의 모든 이권들에 대해 정통해야 한다. ; 의사들은, 한 번 자리를 잡고 나면, 마치 고해 신부나 양심적인 지시자들인 것마냥 행동해야 한다. 14.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교육을 독점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유용한 사상들을 퍼트릴 수 있고, 아이들의 머리 속을 우리에게 맞는 것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 15. 만약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불행히도 기독교인들의 손에 의해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는 상황에 처해진다면, 우리는 그를 도우러 달려가야만 한다. ; 우리 자신들이 판사가 되어 직접 재판을 하게 되기 전까지는, 판사들로부터 그를 구해 낼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증인들을 찾아내도록 하라. 16. 기독 문명의 군주들은 야심과 허영으로 가득 차, 온갖 사치품과 무수한 군대로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의 어리석은 욕구들을 총족시켜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많은 돈을 제공해 주어야 하며, 이를 통해 그들을 우리의 속박아래 구속시켜야 한다. 17. 우리의 아들들이 기독교인의 딸들과 결혼하게 되면 이를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둘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이를 통해 우리들은 가장 내밀하게 결속되어 있는 서클 안에 우리의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딸들이 고이들과 결혼하게 된다면 이 역시 마찬가지로 유용한 일이 될 터인데, 왜냐하면 유태계 어머니의 자식들은 바로 우리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자유 연애 사상을 전파하라. 이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계 여자들이 그들의 종교적 원리와 관행들을 지키는 일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18. 지난 수세기 동안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멸시와 박해를 받아 왔지만, 권력으로 향하는 통로를 개척해 왔다. 그들은 지금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저주받은 기독교인들의 경제적 삶을 통제하고 있고, 이제 그들의 영향력은 정치에 있어서도, 사회적 관례에 있어서도 지배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19. 오랫동안 바라온 바이며, 그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바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혁명이 만연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이를 통해 모든 기독 문명 계층들의 황폐화시키고, 궁극적으로 기독교인들을 우리의 노예들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 때야말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이 완수될 것이다.